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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입문』(중원문화社, 1985) 발췌 Young Marx writings

II. 사상

3. 변증법이란 무엇인가

헤겔철학의 기본적인 사상은 이성·정신·개념이라는 전체론적인 실재가 자기부정을 매개한 자기운동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부정에 의한 발전의 논리가 변증법이다.
…이성·정신·개념의 자기운동은 자기부정과 모순에 의해 야기된다. 부정이 없으면 발전(운동)도 없다. 부정이 발전의 가장 중요한 인자인 것이다. 즉, 어떤 존재(A)는 자신 가운데서 필연적으로 자신을 부정하는 존재(非A)를 산출해낸다.…A는 A이며 동시에 A가 아닌 존재(非A)가 된다. 이처럼 A와 非A가 양립하는 것이 모순인데, 결국 모순에는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기부정(非A)는 다시 한번 부정된다. 그럼으로써 A이면서 또한 非A라는 모순은 그것이 모순되지 않는 더욱 높은 단계로 이행됨으로써 극복된다. 그러나 곧 이 새로운 단계에서 재차 자기부정에 의한 모순이 발생하고 다시 부정의 부정이 행해져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진행된다(부정의 부정을 통한 모순의 극복). 이 과정은 이론적으로는 무한히 반복되며, 그러한 무한한 진행의 전과정을 통해 진리가 실현된다.
…이와 같이 부정의 부정에 의해서 모순을 통일하고 높은 단계로 진행해 나가는 운동을 '지양'(Aufheben; 고양,보존,폐기)이라고 한다.
…형식논리학의 분석적 오성적 사유는 모순을 배제하고 있는 원칙에 입각되고 있기 때문에 모순 그 자체를 인정하면서 처리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모순을 무조건 배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는 모순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헤겔은 모순을 살아 있는 그대로, 즉 동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논리, 운동·발전·종합의 논리인 변증법에 의해서만 그러한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중요한 점은 변증법이 논리적인 모순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모순까지도 파악한다는 것이다.

…헤겔에 의하면 신(神)이 진실로 절대무한자이고 사랑의 신이기 위해서는 신은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신의 한없는 사랑은 신 자신이 육화(肉化)하여,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나타나 십자가에 못박혀 오욕의 죽음을 당함으로써 전인류의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써 완성된다. 다시 말하면 신은 죽음에 의해서 그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죽지 않는 신은 단지 초월적인 존재이며, 그러한 존재는 유한 인간과는 무관한 존재일 따름이다. 신이 죽는다는 것은 신 안에도 부정적인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한 부정적인 요소에 매개됨으로써 신의 활동은 비로소 진무한(眞無限)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무한은 스스로 자신 속에 유한을 내포하고 있으며 유한에 의해 매개됨으로써 비로소 진무한하게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유한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단순한 무한은 이른바 악무한(惡無限)이다. 이처럼 무한은 유한에 의해 매개되고, 절대는 상대에 의해 매개되며, 그리고 신의 절대긍정이라는 사랑도 가사성(可死性)이라는 부정적인 것에 의해 매개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신은 죽었다"고 말했을 때 이것은 위에서 지적한 것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예수는 육화된 신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에서 죽은 것은 바로 그 육신이다. 육신이란 가사적(可死的)인 것, 결국 부정적인 것이다. 예수의 죽음으로 신 속에 내재하는 부정적인 것이 부정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부정의 부정을 거쳐 상대적인 긍정이 절대적인 긍정으로 전환한 것이다. '신의 죽음'은 사실 그러한 절대긍정에 도달하기 위한 '죽음의 죽음'일 뿐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화해를 지향하며, 모순하는 존재의 쌍방을 그대로 인정하는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한' 논리이다.

4. 세계사

…세계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성의 객관적인 형태는 국가이다.

…"나의 변증법은 근본적으로 헤겔과 다를 뿐 아니라 정반대이다. 헤겔에 있어서는 그가 이념이라 부르는 독립적인 주체로 변해버렸던 사유과정이 그것의 외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 현실적인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그것과는 반대로 이념적(관념적)인 것은 인간의 두뇌 속에서 전이되어 번역된 물질적인 것에 다름 아니다."(마르크스,『자본』)
헤겔에게는 물질적인 자연은 이성의 자기소외 모습에 지나지 않으며, 원래 이성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고 그 자신의 독립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이성의 우위를 마르크스는 역전한다. "변증법은 헤겔에게서는 거꾸로 서 있다. 신비적인 베일에 싸인 합리적인 핵심을 보기 위해서는 이것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자본』) 그 결과로서 헤겔에게서는 이성의 자기운동의 논리였던 변증법은 마르크스에게서는 물질의 자기운동의 논리가 된다. 그럼으로써 사유에 대한 존재의 우위가 확정된다. "인간의 의식(사유)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경제학 비판』)
…헤겔의 경우에 세계사를 결정했던 것은 자기의 본질인 자유를 실현하려고 하는 이성의 자기운동이었지만, 마르크스의 경우에는 물질적 생산력과 그것의 발전단계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이다.

5. 정치문제 (헤겔에서 마르크스로)

법철학
…법은 정신의 영역에 속한다. 그 출발점은 '자유의지'이다. 의지가 자유롭다는 것은 그것이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는 비규정적인 한에 있어서이며, 그것이 자기자신에게 하나의 한계를 설정하는 자아, 덧붙이면 자기자신과의 또는 일반성과의 그것(자아)이 동일하면서도 자기에게 어떤 내용을 주는 자아인 한도에 있어서이다. 의지가 자연적 의지일 수밖에 없는 경우에 그것은 욕망이나 충동에 따르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영역은 자의적인 것이다. 그 경우 의지는 '즉자적'으로 자유일 뿐이다. 의지가 '대자적'으로 자유라 함은 의지가 자기에게 특수한 내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내용을 주는 경우이며 바꾸어 말하면 의지가 사유일 때이다(헤겔에게 의지는 사유의 한 특수한 양태이다. 왜냐하면 사유는 현실 속에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가 직접적으로 현존하는 것은 법에 있어서이다. 여러 가지 권리를 소유하며 그것을 행사하는 한 개인은 하나의 '인격'이다. 그러므로 법의 명령은 "한 개인의 인격이다. 따라서 타인을 인격으로서 존중하라"는 것이다. 행동하기 위해서 인격은 자신에게 '자기 자유의 외적 영역'을 부여해 주어야만 한다.…나 이외에도 많은 다른 인격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의 권리는 다른 사람들의 권리에 의해서 제한된다. 그 결과 의지들 상호간에 분쟁이 일어난다. 이 분쟁은 국가의 첫번째 징표인 '계약'으로 해결된다. 즉 두 개의 의지는 하나의 공통의지 안에서 통일되며 이러한 공통의지는 그러한 범위 안에서 하나의 법이 된다.
그러나 일반적 의지를 구현하는 법과 특수한 의지 사이에서도 분쟁이 발생한다. 여기서부터 '불법', 즉 법의 부정이 초래된다. 그러나 곧 특수한 의지가 법을 일시적으로 부정하면 거기에 대항하는 형태로서 필연적으로 법의 회복이 도래하게 된다. 불법의 부정은 '형벌'이다(법의 부정의 부정).…범죄자에게 가해지는 형벌은 그의 '권리'(droit), 그의 합리성이며 그가 그 속에 포함되어야 하는 법칙이다. 범죄자의 행위는 범죄자 자신을 향한 행위여야 한다.
…법은 객관적 정신의 전개의 제1단계이다. 트리아데(Triade: 헤겔 철학에서, 변증법의 발전 단계인 정(正), 반(反), 합(合)의 세 단계를 한 조(組)로 하여 이르는 말)를 보완하는 다른 두번째 단계는 이미 앞에서 서술한 '주관적 도덕'(Moralitat: 도덕성)과 '객관적 도덕'(Sittlichkeit: 인륜)이다. 엄격한 법(추상적인 법)이 행위의 '외면적인' 양상밖에 고려하지 않는 것과는 반대로 도덕적 견지는 그 '내면적 동기'를 고려한다. 여기에서 고려되어야 할 점은 행위를 수행하는 자가 꾀하는 '목표'이며 그를 움직이는 '의도'이다. 이러한 의도는 일단 처음에는 당사자 개인에게만 돌아가는 이익을 목표로 하지만 그것이 확장되면 만인의 복지를 꾀하는 것으로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즉자적이며 동시에 대자적인 '복지'(bien: 선)라는 관념이 발생된다. 결국 여기에서는 주관적·특수적인 의지와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지향하는 의지의 개념이 화해하고 있는 것이다.
…주관적인 도덕의 영역에서는 선은 아직 추상적인 보편이며 따라서 규정될 필요가 있다. 선과 주관적 의지의 구체적 통일성은 객관적 도덕의 수준에서 도달된다. 선은 이때 여러 의식들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적 힘에 의해서, 즉 개별적 제의지를 집단적 이익이라는 공동적 편익 속으로 통일하는 여러 제도의 힘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하나의 현실이 되며 이리하여 합리적인 존재, 보편적인 존재의 승리를 확보한다.

사회적 정신의 최초의 실현형태는 '가족'이며 그 근본적인 역할은 도덕성의 최초의 원천인 어린이의 교육에 있다. 여기에서 트리아데의 제2의 계기는 '시민사회'이다. 여기에서는 다양한 인격이 자기의 이익에 따라 연합함으로써 만들어진 여러가지 연합체가 상호관계를 맺기도 하고 종종 전쟁을 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하나의 완전한 외면적인 질서가 성립한다. 이 질서는 여러가지 욕구가 화합에 의해서, 그리고 또 집단적 통제에 의하여 부과되는 그들 욕구의 상호제한에 의해서 달성되는 것이다.
제3의 계기는 국가이며 이것은 최고의 사회적 실현형태이다.…시민사회는 개인주의적·공리주의적 세계이며 '사회적 원자론'의 영역임에 반하여, 국가의 목적은 그 성원에게 물질적 안락과 '추상적' 자유(개인적인 관점에 의한 자유)를 확보하여 주는 데에 있지 않고, 이성적이라는 그들의 참된 직분, 즉 그들이 보편적인 존재 속에서 살면서 그리하여 '구체적인 자유'로까지 자기를 고양시킨다는 참된 직분을 달성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국가에 있어서 비로소 인간은 가장 구체적이며 가장 고도의 도덕성에 도달하는 것이다.
…헤겔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정치체제는 세습적 입헌군주제이다. 그는 "국가의 인격성은 그것이 하나의 인격인 한에서만 진정한 현실이다"라고 쓰고 있다(『법철학』,§279).

정치면에서의 헤겔의 우파와 좌파
J. 레벤슈타인이 말하였듯이 헤겔의 정치면에는 양면이 있다. 한쪽으로 이 정치론은 현존하는 현실과의 화해를 지향하며 그 현실을 합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것을 이해하려고 한다.…그러나 다른 쪽에서 본다면 헤겔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변증법적 운동이 이러한 종류의 고정화에 대립하고 있다. 이 변증법적 운동은 여러가지 적대관계에 의하여 조건지워져 있는 진보라는 관념을 정당화시켜 주고 있으며, 그리고 그러한 적대관계는 사회계급 상호간은 물론 국가 간의 분쟁이 되어 혁명이나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일반적으로 말하면 우파는 『법철학』의 실천적 결론 특히 문장의 어귀에 집착하며, 이것과 반대로 좌파는 본질적으로 헤겔체계의 일반적 방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


헤겔과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1844)에서 헤겔의 학설이 그에게 있어서 역사적 철학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헤겔의 학설을 독일사를 '관념적으로 계승하는 학설'로 간주하며 헤겔철학은 사상의 범주에 있어서 자본주의가 그 제도내에 지니는 중요성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부르노 바우어를 반박하는 『신성가족』(1845)에서 현실의 인간 대신 '자기의식'이나 정신을 중시하는 사변적 변증법을 배격하고 있다. 그들은 포이에르바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도 유물론자라고 선언하였지만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사상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결실인 '변증법'을 버리고 18세기의 기계론적 유물론으로 되돌아갔다고 비난한다. 왜냐하면 변증법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변증법에 혁명적 성격이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국가를 시민사회와 구별한다. 마르크스는 반대로 국가를 시민사회 속으로 흡수하여 시민사회의 내부에 존재하는 사회계급 간의 제모순을 파헤친다. 제국가 간의 모순 대신 이러한 사회계급 간의 모순이 헤겔의 역사변증법을 지배하고 있다. 마르크스에게 국가는 이미 헤겔이 말하는 유기적 전체가 아니라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한, 즉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를 지배하기 위한 도구이며,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기의 '소외'를 지양하려 한다면 이번에는 자기 편에서 역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도구이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공통점은 특히 '방법'에 관련되어 있는데 마르크스는 이 '방법'을 '체계로' 대치한다.…"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발생하는 자본주의적 취득양식은, 즉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자신의 노동을 기초로 하는 개인의 사적 소유의 부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의 과정과 같은 필연성으로써 그 자신의 부정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부정의 부정이다"(『자본』).…프롤레타리아가 자기의 혁명을 준비할 수 있을까라는 것은 그들이 자기자신을 '즉자적' 계급상태로부터 '대자적' 계급상태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하는 문제일 뿐이다. 즉 자본주의적 사회에 있어서 자기의 '소외' 및 '부르주아지의 무덤을 파는 사람'이라는 자기의 역사적 역할을 자각하는 것에 의해서 가능할 뿐이다.




※헤겔과 사르트르
…사르트르는 헤겔로부터 '즉자'와 '대자'의 대립이란 개념을 빌어다 쓴다. 그러나 그의 경우 이들 용어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사르트르가 사용하는 '즉자'라는 용어의 의미는 대상의 또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의, 즉 '초월된' 과거의 존재양식이라는 뜻이며, '대자'라는 용어의 의미는 부단히 움직이고 변화하는 의식(지향성을 띠는)의 존재양식이란 뜻이다. 헤겔의 경우 '즉자'존재란 아직 현실존재로 이행되어 있지 않은 잠재성이고, '대자'존재란 구별된 하나의 특수한 현실존재로서 실현된 것(이것은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이다. 사르트르가 '대자'를 일종의 '무'(無) 또는 '존재의 구멍'이라고 할 때 그것은 청년 헤겔의 문장과 일치하지만 그러나 그가 '존재'와 '무' 사이에 설정한 대립은 헤겔 논리학의 출발점 역할을 하고 있는 대립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읽어야 할 책 목록
- A. 코제브,『역사와 현실변증법』
- H. 마르쿠제,『이성과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