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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김석 - 정신분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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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 주체, 환상 대상a 등 라캉이 새롭게 정식화한 정신분석의 개념들도 그가 인간 경험의 핵심이라고 말한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개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나중에 정신분석의 윤리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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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캉은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주장하면서 정신분석 이론에서 언어적 접근 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라캉은 프로이트가 당시 학문적, 시대적 한계 속에서 미처 개념화하지 못했지만 의도했던 내용을 새 시대의 학문적 성과와 결합시키면서 현대사상 속에서 정신분석의 역할을 확장하고자 하였다.(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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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의 본질은 구체적인 대상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다. 욕망은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며,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해주는 그런 것이다. 인간은 무엇보다 언어적인 존재이고 언어는 언제나 인간을 속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무엇인가를 찾으며 그것이 욕망의 대상이라고 착각하지만, 어떤 대상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여는 끈질기게 인간을 괴롭힌다. 그러기에 욕망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복합적 관계 속에서 작용하면서 죽음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라캉 이론과 실천 속에는 욕망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이 있다. 즉, 욕망이 인간의 고유한 본질이며, 정신분석은 욕망이 무엇이고 어떻게 욕망의 윤리에 충실해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는 물론 실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 말이다.(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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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계와 주체의 관계'가 바로 『에크리』의 핵심 주제를 이룬다. 욕망, 충동, 결여, 반복, 죽음, 대상 등 여러 용어들은 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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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제브는 헤겔이 역사의 동력으로 설정하는 자기의식의 변증법과 주체 상호간 인정투쟁이라는 개념이 새로운 시대의 프랑스 철학을 확립하는 데 아주 유용한 개념적 자원이 될 수 있음을 깨우쳐준 사람이다. …… 코제브는 『정신현상학』에서 말하는 의식의 변증법을 생생한 현대적 언어와 맥락 속에서 인류사적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설명한 사람이다. 인정을 위한 상호 투쟁, 주체를 무화시키는 타자, 역사의 종말과 부정성, 역사의 원동력으로서 욕망 개념 등은 코제브에 의해 해설되고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라캉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코제브는 헤겔의 텍스트를 『정신현상학』4장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개념을 중심으로 재해석하였는데, 그 근저에는 인정을 위한 욕망이 깔려 있다. 주인과 노예의 상호 투쟁은 욕망의 만족을 위한 것인데 욕망의 만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타자로부터 오는 인정이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욕망은 자의적인 주관적 욕망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에 대한 욕망으로 구조화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욕망의 이러한 변증법적 성격은 라캉의 상호 주체성 개념으로 계승된다.(p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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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계는 주체의 원인이자 활동 무대가 되는 위상학적 공간을 말하며, 시니피앙의 연쇄적 결합과 상호 작용에 의해 구성된다. 상징계는 언어적인 영역에 속하지만 언어 자체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상상적 공간을 말하는 게 아니라 교환과 차이를 발생시키는 추상적 구조와 형식을 말한다. 그것은 순수 시니피앙들의 결합에 의해 물질적 기초를 얻으며 주체를 상호 관계 속에서 배치하고 이동시킴으로써 역사를 진행시키는 초월적 영역이 된다. …… 상징계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은 주체는 상징계의 주인이 아니라 상징계를 이루는 한 항에 불과하며 그때그때 시니피앙의 순환에 의해 주어진 역할을 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이다.(pp.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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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둑맞은 편지라는 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상징계는 순환의 구조이다. 그 구조 속에서 주체의 절대적 자리는 없으며 편지는 부재와 현존을 반복하며 이 시선에서 저 시선으로 옮겨 간다. 상징계가 반복을 특성으로 한다는 것은 죽음 충동이 상징계의 본질을 이룬다는 말이다. 죽음은 충족되지 않는 결여에 다름 아니고, 반복은 그것을 메우려는 운동이기 때문이다.(p.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