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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Rene Decartes)_『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 철학

    1. 생애
    1596년 프랑스 투렌에서 태어났다. 1604년에서 1612년까지 그는 라 프레슈의 예수회 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수학과 논리학, 철학을 배웠다. 이 시기 그는 계속해서 의문과 논란을 야기한 철학 이론들에 비해 확실성과 정확성을 가진 수학에 깊이 감명받았다. 『방법서설』(1637),『제1철학을 위한 성찰』(1641),『철학 원리』(1644),『정념론』(1649)을 저술했다. 1630년 2월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데카르트의 주된 관심은 지적인 확실성에 대한 문제였다. 그는 시인이 그의 "상상력"을 통해 우리에게 지식을 줄 뿐만 아니라 철학자보다도 진리가 "더욱 환하게 빛을 발하도록" 한다며 시가에 대해 호의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시가는 정신의 산물이지 연구의 결과가 아니기 떄문에 그것은 우리에게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그는 또한 신학을 경원했지만 "그것의 계시적인 진리는 우리의 지성 위에 있으며" 누군가가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면 "그는 위로부터의 예외적인 도움을 받아야만 하며 보통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가 대학에서 배운 철학도 이런 면에서 이미 쓸모가 없었다. 왜냐하면 "논의의 주제가 아닌, 따라서 의심쩍지도 않은 그것 속에서는 단 하나의 사실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2. 방법
    데카르트의 방법은 정신의 힘에 특별한 규칙의 집합을 무장시키는 것이다. 그는 방법의 "필요성", 즉 체계적이고 질서 있는 사유를 주장했다. 그는 맹목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을 증오했다. 본래 우리의 정신은 두 가지의 힘, 즉 직관과 연역을 소유하고 있다. "그 정신의 힘에 의해 우리는 전혀 착각의 두려움 없이 사물에 대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힘들이 세심하게 다듬어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이탈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방법은 직관과 연역의 힘들이 올바르게 인도되게 하는 규칙들 가운데 있다.

    2.1. 수학의 예
    데카르트는 분명하고 정확한 사유의 가장 좋은 예로 수학을 들고 있다. "나의 방법은 산술의 규칙에 확실성을 주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그는 썼다. 사실상 데카르트는 지식의 전부가 보편 수학이 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수학적인 확실성은 특별한 사유 방식의 결과며 그가 이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나의 힘의 영역 내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참된 지식의 발견을 위한 필요한 방법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수학 그 자체가 방법은 아니며 그것은 단지 데카르트가 찾고 있는 방법을 보여줄 뿐이다.
    수학 속에서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신 활동에 관한 근본적인 그 무엇을 발견했다. 특히 그는 어떤 근본 진리를 직접적이고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에 몰두했다. 그는 우리의 정신이 어떤 관념을 절대적으로 명석 판명하게 알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에 관념이 경험으로부터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기술적 설명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2.2. 직관과 연역
    데카르트는 직관과 연역의 기초 위에 지식의 거대한 체계를 세웠다. 그에 의하면 "이들 두 방법은 지식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따라서 어떤 다른 방법도 "오류를 범하기 쉽고 위험한 것으로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직관이 의미하는 것은 정신 속에 아무런 의심도 남겨 두지 않는 매우 명석한 지적 활동이나 통찰이다. 감관의 불분명한 자료와 상상의 불완전한 산물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반면 직관은 "맑고 빈틈없는 정신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도록 매우 쉽게 판명해주는 개념"을 제공해준다. 직관은 우리에게 명석한 개념뿐만 아니라 실재에 관한 진리도 준다. 더구나 우리가 어떤 진리와 또 다른 진리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직관의 덕분이다.
    데카르트는 연역을 직관과 유사한 것으로 기술하여 연역이 "확실하게 알려진 사실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모든 추론들"이라고 말한다. 직관과 연역의 유사한 점은 양자가 모두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직관에 의해 우리는 완전하고 직접적으로 단순한 진리를 파악하며 연역에 의해서 우리는 "정신의 연속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행위"를 통한 진리에 도달한다. 연역을 직관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시켜 놓음으로써 데카르트는 그 이전까지만 해도 삼단논법이라고 불리는 추리방식과 동일한 시도였던 연역법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공했다. 연역법은 삼단논법과 다르다. 즉 삼단논법은 개념들 서로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는 반면에, 데카르트에게 연역법은 진리들 상호 관계를 나타낸다. 그것은 확실하게 알려진 하나의 사실에서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결론으로 진행하는 것이라고 데카르트는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삼단논법에서 하듯이 하나의 전제에서 결론에 이르는 것과는 다르다. 데카르트는 하나의 사실에서 시작한 추론이 하나의 전제에서 시작한 추론의 이러한 차이점을 강조했으며 그것은 그의 방법의 중심이 여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하나의 전제에서 "일관성 있게" 추론할 수는 있지만 그 결론의 가치는 그것이 참이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데카르트는 지식이 개인 자신의 정신 속에 절대적인 확실성을 가진 출발점 위에서 이루어지게 되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지식은 직관과 연역을 필요로 하는데 제1원리들이 직관에 의해서만 주어진다면 직접 얻어지지 않는 결론들은 단지 연역에 의해서 얻어진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방법은 직관과 연역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그것들의 안내를 위해 만들어놓은 규칙들에도 있다.

    2.3. 방법의 규칙들
    데카르트가 규칙을 정해놓은 주된 이유는 정신활동에 분명하고 질서 있는 절차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어떤 진리를 발견해내고자 한다면, 그 방법은 정신적인 통찰력이 지향해야하는 대상들의 순서와 배열 속에 전적으로 놓여있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다. 정신은 단순하고 매우 명석한 진리와 더불어 시작해야 하며 단계를 밟아서 명석함과 확실성을 잃지 않고 차례로 움직여야 한다. 데카르트는 정신이 추론을 위한 적당한 출발점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고 올바른 추론 과정을 향하도록 하는 규칙들을 체계화하는 데 수년을 보냈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에서 볼 수 있는 21가지 규칙 중에서 다음의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
    규칙3: 우리가 하나의 주제를 탐구하고자 할 때 "우리의 탐구 방향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놓은 것이나 우리 스스로가 억측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우리가 명석하고 판명하게 알 수 있고 확실히 연역할 수 있는 것으로 향한다."
    규칙4: 이것은 다른 규칙들이 엄격하게 지켜지기를 요구하는 규칙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들을 정확히 관찰한다면 우리는 거짓인 것을 참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헛되이 정신의 노력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규칙5: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한 명제들을 점차 단순하게 줄여가고 더욱 단순하게 되지 않는 명제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해서 이와 똑같은 단계에 의해 다른 모든 명제들의 지식을 얻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정확히 그 방법에 따르게 된다.
    규칙8: 탐구해야 할 문제들 속에서 우리의 오성이 충분히 직관적인 인식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우리는 거기에서 잠시 멈추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도 네 가지 규칙을 정했다.
    첫째, 내가 참인 줄 분명하게 알지 못했던 것은 결코 참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추호의 의심도 없이 분명하게 나의 정신에 제시되는 것 외에 나의 판단 속에 어떤 다른 것도 포함시키지 말라.
    둘째, 검토 중인 어려운 문제들을 각각 가능한 한, 그리고 타당한 해답을 얻는 데 필요한 만큼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라.
    셋째, 가장 단순하고 쉬운 대상들에서 시작해 점차 복잡한 대상으로 나의 사유를 진행하라.
    넷째, 모든 경우에 빠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확신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열거하고 전체적으로 재검토하라.
    데카르트는 우리가 "생득관념과 관계하려는 어떤 경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생득관념을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했다. 우리는 이러한 진리들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연역을 위해 신뢰할 만한 기반을 확신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단지 그의 이성적인 힘만으로도 모든 철학을 처음부터 시작해서 재건할 수 있으며 그의 규칙에 따라 그것들을 지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수학적인 개념들뿐만 아니라 실재의 본질에 관한 지식에서 확실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3. 방법적 회의
    데카르트는 우리의 지식을 이루기 위한 절대적이고 확실한 출발점을 찾기 위해 회의의 방법을 사용했다. "나는 전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에게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거부해야만 한다"며 모든 것에 회의를 품었다. 그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는 모든 억측들을 청산해서 "그것을 이성적인 틀의 통일성에 부합되도록 만든 다음, 더 나은 의견에 의해서건 아니면 같은 것에 의해서건 그것들이 후에도 대치"되기를 바랐다.
    데카르트는 "다행히 착실하고 추호의 의심도 없는 단 하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회의를 반전시켜서 하나의 철학을 성립시키기 위해 충분할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나의 육체의 존재나 내가 깨어 있다는 사실 또는 내가 기만당하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모두가 환상이거나 거짓이라는 사실을 회의한다 해도 내가 전혀 회의를 가질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남게 된다. 즉 "나는 존재한다sum"는 것이다. 회의한다는 것은 사유하는 것이며 "사유하는 나는 필연적으로 어떤 무엇일 수밖에 없다. 또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너무나 확고부동하고 확실해서 회의주의자의 어떠한 과장된 억측도 그것을 붕괴시킬 수 없다고 말하는 동안, 나는 그것을 내가 추구했던 철학의 제1원리로 주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데카르트는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진리가 매우 명석하므로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이 결론은 질서 정연하게 사색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 중에서 제1이고 가장 확실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사유하는 사물이다. 사유하는 사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의하고 이해하며 긍정하고 부인하고 의지하며 거절하는 사물일 뿐만 아니라 상상하고 느끼는 사물이다." 사유란 하나의 사실이기 때문에 사유하는 사물인 사유자가 있어야 한다고 데카르트는 가정한다. 이 "사물"이 육체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사유하는 것이 그 본질인 하나의 실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것은 존재를 위해서 어떤 장소도 필요 없으며 그것이 어떠한 물질적 사물에 근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 의해 나, 즉 자아ego가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확실해 보인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유도 사유하는 사물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4. 신의 존재와 영원한 사물
    사유하는 존재로서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실성을 넘어서기 위해 데카르트는 우리는 어떤 것이 참이라고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묻는다. "한 명제가 참이고 확실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확실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우리가 매우 명석 판명하게 생각하는 사물들은 모두 참이라고 하는 것을 일반적인 규칙으로 가정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명석한clear"이 뜻하는 것은 대상들이 우리의 눈 앞에서 확연하게 보이는 것처럼 "세심한 정신에 현저하게 분명한 것"을 의미하며, "판명한distinct"이란 "이외의 모든 대상과 구별되고 매우 정확한 것 이외의 어떤 것도 그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지 않은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의 명제가 참인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나의 정신에 명석 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명석 판명한 관념들의 참됨을 보장하기 위해서 데카르트는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우리를 거짓 사물이 참이라고 생각하도록 기만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는 그 자신의 존재와 내면적 사유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에 의해서만 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정신을 스쳐 가는 여러 관념을 검토함으로써 그의 증명을 시작했다.
    이들 관념에 대해 금방 생각나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즉 이 관념들이 생겨났다는 점과 그것들이 갖고 있는 내용에 따라 현저하게 구별된다는 점이다. 관념들은 결과며 그 원인이 밝혀져야 한다. 우리의 관념은 "나와 함께 태어나기도"하고 나에 의해 "창출되기도" 하며 어떤 것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성에 의하면 "무에서 도출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또한 "조금 더 완전한 것은 조금 덜 완전한 것의 결과일 수 있다." 실재의 정도에 따라 판단할 경우 관념들 가운데 어떤 것은 나 자신 속에 그 기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신의 관념은 매우 "객관적인 실재"를 함유하고 있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 관념을 창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신이라는 명사에 의해 나는 무한하고 독립적이며 전지전능한 실체를 이해하고 그 실체에 의해 나 자신과 그 밖의 모든 것--그것들이 만약 존재한다면--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유한한 실체인 내가 어떻게 무한한 실체의 관념을 낳을 수 있는가? 완전의 관념은 매우 명석 판명하기 때문에 그것은 나의 불완전한 본질에서 생겨날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내가 잠재적으로 완전하다 해도 완전의 관념이 그 잠재성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연유로 데카르트는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에 대한 관념의 원인은 그 자신의 외부로부터, 즉 존재하는 완전한 존재인 신에서 유래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왜냐하면 (1)관념은 원인을 가지기 때문이고 (2)원인은 적어도 결과와 마찬가지의 실재를 가지기 때문이며 (3)그는 유한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거짓과 기만은 필연적으로 어떤 결점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자연의 가르침 때문에 신은 기만자가 될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데카르트는 인간관계의 논거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외에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처럼 존재론적 증명을 제시했다. "내가 명석 판명하게 이 대상에 속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모든 것이 진정으로 그것에 속해 있다면 이로부터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논거가 나오지 않겠는가". 데카르트는 우리가 삼각형의 속성들을 인지하지 않고 그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신의 관념이 명석하게 존재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는 그것을 생각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사물의 참되고 불변적인 본성, 즉 그것의 본질이나 형상에 속하는 것을 명석 판명하게 이해하는 것은 그 사물을 진실로 확인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신의 본성을 매우 정확하게 탐구한 후에야 신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석 판명하게 이해하며 우리는 신을, 즉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5. 정신과 육체
    이제 데카르트는 그의 모든 회의를 반전시켰으며 자아와 사물, 그리고 신이 존재함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사유하는 사물들과 연장된, 즉 차원을 가지는 사물들이 존재한다고 결론지었다. 사람은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지니기 때문에 그에게는 이 양자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문제가 남게 된다. 우리는 실체를 그 속성에 의해 인식하며 우리가 두 가지의 다른 속성, 즉 사유thought와 연장extension을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두 가지의 다른 실체(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즉 정신과 육체가 존재해야 한다. 데카르트는 실재를 "오직 스스로 존재해야 하는 실존하는 사물"이라고 정의하기 때문에 각각의 실체는 서로 완전하게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정신에 대한 것을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육체와는 어떤 연관도 지을 필요가 없으며, 마찬가지로 육체도 정신과의 관련 없이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원론의 결과들 가운데 하나는 데카르트가 신학과 과학을 분리시켰으며, 그 양자는 어떠한 갈등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점이다.
    데카르트는 동물에게 정신의 힘을 부여할 어떤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것은 동물들의 모든 행위나 동작이 단지 기계적인 고찰에 의해서만 설명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떠한가? 인체의 활동이 대부분 동물처럼 기계적이며 호흡과 같은 육체의 행위는 자동적이다. 인간의 육체 작용은 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모든 물리적인 사건은 기계적인 또는 작용인의 고찰에 의해서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 육체의 물리적 과정을 기술할 때 목적인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 정신은 단지 육체의 특정한 요소나 부분의 운동 방향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사유와 연장, 즉 정신과 육체는 데카르트에게 서로 동떨어진 실체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직접 육체의 여러 부분들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송과선--즉 뇌 속에서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이 무엇보다도 먼저 "생기"와 접촉하여 이를 통해 영혼은 정신과 상호 작용한다. 그러므로 동물과 달리 인간은 여러 종류의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그의 엄격한 이원론에서 정신과 육체의 상호 작용에 관한 기술이 어려움을 알았다. 데카르트는 "사유"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 의해 정신과 육체의 분리를 더욱 심화시켰다. 왜냐하면 그는 전통적으로 육체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경험, 즉 "느낌"과 같은 감각적 지각의 전 범위를 사유의 행위 안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내가 무엇인가"를 "사유하는 사물"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육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일체가 "사유자" 속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사유하는 사물은 "회의하고 이해하며, 긍정도 부정도 하고, 의지를 작용하며 거절도 하는 사물인 동시에 상상하고 느끼는 사물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점에 이르러 데카르트는 자신의 이원론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고통, 배고픔, 갈증 등과 같은 감각들에 의해 본성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내가 배 안의 키잡이처럼 육체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말하자면 그것과 혼합되어 있어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그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송과선의 상호 작용이 있으려면 우선 접촉이 있어야 되고 그렇게 되면 정신이 연장되어야 한다는 어려운 문제가 생기는데도 불구하고 데카르트는 정신의 위치를 송과선 안에 두려고 했다. 이 문제에 대해 그는 그의 방법의 규칙들에 의해서도 어떠한 명석 판명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